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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기潛水記
 집주인  09-03 | VIEW : 828
요즘 넷티즌 말 중에 잠수潛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웹 활동을 어느 기간 동안 접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도 8/26 일요일부터 잠시 잠수를 했었습니다.

손목에 차고 흔들어야 가는 고풍의 로렉스 손목시계가
오늘 아침에 차고 외출하려다 보니 8/27 10:00에 멈춰 있네요.
굳이 걱정 끼쳐드릴 필요가 없는 분들께는 해외 여행을 좀 다녀 온다고도 했고
또 어떤 친구들에게는 영판 거짓말로 때울 수 없어서
사마귀 정도를 떼어버리는 수술 때문에 잠시 입원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내 손목시계가 멈추었던 바로 그 시각에
내 의식도 멎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보고 알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에 대해 미리 설명 들은 내용과
깨어난 뒤의 내 몸에 난 상처, 회복기의 통증 등을 근거삼아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거기서 다시 의식으로 오가던 동안에 내게 일어났던 일을 기록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8/27 월요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본관

07:30  병실에서 로봇 수술실로 이동
          수술실에 이르러 보니 같은 시간에 수술 받는 사람이 여럿인 것 같습니다.
          운송용 침대에 나란히 누운 환자들 옆에 담당의들이 마치 제대열병처럼 줄 맞춰 섰습니다.
          
08:00  그러더니 이를테면 헤쳐모여
          각자 자기 환자를 데리고 각자 수술대에 옮겨 눕히고 준비를 시작합니다.
          옷을 벗기고, 링거를 꼽고, 무언가 여기저기 연결을 하기도 하고, 부산합니다.
          반듯이 누운 머리 위에서 아직 켜지지 않은 커다란 수술등이 내 모습을 내려다 봅니다.

08:30  시간이 대충 그렇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한 초록색 수술복의 사내가 내게 오더니 몸을 굽혀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을 겁니다.
          ' 오늘 수술의 마취의醫입니다. 혈압이 조금 있으시군요. 당뇨는 없고요. 이런 수술도 오늘이 처음이시고...'
          '좋습니다. 그러면 한잠 주무십시요.'
          그리고는 곧 의식이 내게서 떠났습니다.

09:45  수술 시작
          아내에 의하면 수술실 밖의 전광판에 켜져있던
          '수술준비 중'이란 싸인이 '수술 중'으로 바뀐 것이 바로 이때랍니다.
          다빈치 로봇에 의한 복강경 수술의 시작입니다.
          먼저 배에 구멍을 뚫고 탄산가스를 주입하기 시작합니다.
          내 배가 공격 받은 복어처럼 부풀어 오르면
          머리를 아래로 수술대를 기울입니다.
          장기를 밑으로 밀어붙여 수술 작업 공간을 마련하려는 것이지요.
          구멍이 몇개 더 뚫어지고
          로봇 팔과 복강경이 투입됩니다.
          65년생, 탤런트처럼 말쑥하고 정리된 얼굴의 비뇨기과 나군호 박사
          미국에 가서 로봇 수술을 전공하고 온 젊은 집도의執刀醫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로봇 수술을 권유했었는데,
          8/4 삼성의료원에서 조직검사 결과로 전립선 암 확진을 받고
          국립암센터 조관호 박사와 최신 장비인 Proton Therapy를 의논하고 난 뒤
          내 아들의 손위 동서이며 미국 있는 전립선 로봇 수술 전문의인 Gerald 박의 소개로 그를 만났습니다.
          그가 15배 배율로 내 전립선 주위를 살핍니다.
          다행히 암은 아직 전립선 내부에 contain되어 있고,
          주위의 미세한 신경조직은 건강해 보입니다.
          신경다발을 가는 것까지 다 살리고 전립선 절제에 들어갑니다.
          다빈치 로봇 팔이 메스도 되고 꿰매는 손도 됩니다.
          전립선을 완전히 절제하고 주변의 정랑, 림프샘 등도 제거하여
          배꼽 위의 작은 절개부를 통하여 꺼집어냅니다. 조직검사를 위해 보냅니다.
          방광에 요도를 통해 넣은 임시 도뇨관導尿管을 설치하고 요도와 방광을 직접 연결
          로봇 팔이 정교하게 꿰맵니다.
          피 흐름이 줄어드는 것이 완연합니다.
          로봇 팔, 복강경 등을 뽑아내고 절개부분과 구멍 뚫었던 부위를 봉합합니다.
          마지막 오른쪽 옆구리 구멍을 통해 진공펌프로 가스를 뽑아냅니다.
          남산만하던 배가 금새 임신 3개월 임산부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었습니다.
          구멍에 호스를 꼽고 밖에 진물 트랩을 달아 연결합니다.
          수술이 끝났습니다.

11:30  보호자실 전광판의 '수술 중' 싸인이 '회복 중'으로 바뀝니다.

13:30  희미한 시야에 아내가 나타납니다.
          '괜찮아요?' 묻습니다.
          '괜찮아.'
          희미하게 웃어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병실로 돌아와 다시 잠에 빠집니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수술내용을 적어본 것은 혹 비슷한 사정에 놓여있는분께 참고로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은 하심회 홈과 서울고 동기회 홈에 '화두의 비밀'이라는 제목 올려 놓고 수술을 위한 잠수에 들어가면서
엉뚱하고 염치없는 욕심을 하나 품고 있었습니다.
'수술 전후를 통해 화두가 이어지는지 어디 한번 들어 보리라.'
공부도 않고 시험 잘 쳐보겠다는 생각, 안통하는 것이 인과론의 세계입니다.

입원기간을 통해 인과론의 실습 뼈저리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봉합 부위가 아프고 땡기더라도 자주 호흡을 불어내 가래를 뱉어내라는 간호사의 지시 귀찮다고 어겼더니
열은 열대로 오르고 가래 때문에 기침이 잦아져 그때마다 봉합부위가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과보로 받았습니다.
첫날부터 땡기더라도 조금씩 걸어서 장이 제자리를 빨리 찾아가게 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못 걷겠다고 버텼더니
마침내 이튿날이 되어도 깨스는 통하지 않고 체액내에 녹아있던 미제거 탄산까스가 기화되어 배는 다시 부풀어 올라서
봉합부위 땡기는 것이 무어 얘기꺼리가 아닙니다.
누워있을 수가 없어 어기적 어기적 병동 복도를 여덟 바퀴나 돌고서 겨우 첫 방귀를 뀌었습니다.
아 그 방귀의 소중함이란...
과보는 즉시 받는 것이 가장 가볍고, 시간이 거듭되고, 생이 거듭될 수록 무거워진다고 하니
인因의 씨앗을 뿌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화두가 다 무슨 얼어죽을 화두입니까?
배는 불러 터질 것 같은데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장기들이 제가끔 둔중한 아픔으로 불평을 해댑니다.
몸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고양된 정신의 어떤 힘이 있을 법도 한데요.
'병들어 마음기른 공을 깨닫는다? [苕溪詩의 病覺養心功]', 읊어봤지만
마음을 길렀어야 그 공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수를 통해 체험한 값진 인과론의 소회所懷입니다.

이번일은 언제 지은 무슨 인因의 과果였던 것인지요? 그리고 언제 무슨 과果의 인因이 될런지요?

  


          
          
          
          

          

          
          



동글이
因의 果 이건 果의 因이 되건, 건강하세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의 아들딸들보다 손주손녀들을 위해서... :-)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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