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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상(無住相) - 엔지니어97 기고
 집주인  12-07 | VIEW : 1,541



한 삼십년 전쯤, 신입사원으로 유공(당시 대한석유공사)의 Process Engineer 명함을 받아들고 가슴이 벅차오를 무렵 어느 선배께서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아마 어느 더 높은 선배에게 들었겠지) 들려주던 것이 생각난다. "엔지니어의 일생이란 말이야. 대형 project를 서너개 하면 지나가고 만다는 거야."

그럴싸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그 후 경험으로 배워 알게 되었지만, 기획단계 2년, Plant 건설에 3년, Commercialization 2년, 이렇게 줄잡아 계산하자면 한 project 완성이 7년이고, 운좋아 그런 project를 한 서너개 관여해 보게 된다면 삼십년 직장생활을 보람있게 보냈다고 후배들에게 교훈삼아 말함직도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나도 참으로 福 받은 인생이어서, 그럭저럭 삼십년 직장생활 속에서한 너덧개 대형 project를 때로는 깊게, 때로는 얕게 관여해 보고 그렇게 내 손이 닿아 창업한 사업 중 하나의 一員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나프타 분해시설(72년 가동), Solvent Plant(81년 가동), Aromaltics Complex(85년 가동), 신규 에틸렌 Plant(91년 가동), POSM 사업(91년 가동)을 위한 미국 ARCO Chemical사와의 합작회사 설립이 그 대표적인 것이며 보다시피 6~7년 터울로 새로운 사업이 실현되어 왔다. 이 삼십년 동안이 우리나라 경제가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기간이며, 그랬기에 좋은 회사, 좋은 선배들 밑에서 福 많은 엔지니어 人生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강의 기적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요, 경제학자도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것이 우리에게 가능했는 지에 대하여 짐작을 해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다. 잘 교육된 싼 값의 노동력, 엘리트 행정관료와 국가관·민족의식으로 무장된 지도자 집단, 최고급의 두뇌집단이 엔지니어 직업을 선택하도록 유도된 사회경제적 여건, 나아가서는 2세 교육을 포함한 가정의 모든 문제를 떠맡아 남편이 일에 대해 헌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준 꿋꿋한 우리 아내들의 능력과 미덕 등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요약하여 나는 이것을 前代의 恨과 後代의 희생까지를 한 세대에 집결한 처절한 집중의 결과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러기에 이 기간을 성취하며 살았던 우리세대는 뜻밖에도 우리가 강제한 결과가 되고만 後代의 희생 - 價値觀의 훼손, 가정교육의 失敗, 傳統의 斷絶 등에 대하여 마지막까지 성실성을 가지고 그 회복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소견을 갖게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 나와 주변으로부터의 출발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더러 울보란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우는 것도 다 늙은 어른으로서는 창피한 일인데 뉴스를 보다가도 심지어는 만화를 보다가도 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육군 쫄병 생활을 하면서도 빳다를 맞고는 울지 않았다는 것이 내 항변이다. 아내는 나더러 당신이 무슨 기술자냐고 한다. 허기야 두꺼비 집은 신방과 나온 우리 큰 딸이 고치고, 전기 다리미는 러시아어 전공의 막내딸이 고친다. 이 놈들이 다 시집가고 나면 할 수 없지. 아마도 불문과 나온 우리 할멈이 고쳐줘야 할 것이다.

Aromatics Complex Projec는 기술자로서 나를 두번 울게 한 project였다. 사업계획이 연례행사처럼 반려되어 오던 Gulf 경영시절, 빤히 반려될 계획을 오뚝이처럼 매년 되제출하던 우리들도 오기덩어리였다. 유공의 경영주체가 바뀌고 첫 project로서 이 사업이 이사회에서 승인되던 날, presentation을 마치고 배석했던 나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첫번째 눈물. 성취감 속의 기쁨의 눈물이었다. Plant의 개념설계, 기술선 선정, 투자지출규모 확정 등이 끝나자 일은 Project 집행 부서로 옮겨지고 나를 위시하여 사업계획을 추진하던 추진팀은 흩어져 각기 평상의 업무로 돌아갔다.

세월은 흘러서 85년 초 공장이 준공되자 성대한 준공식이 열리고, 인물 좋은 돼지를 골라 고사도 지내게 되었다. 높으신 어른들이 모두 돼지머리에 절하고 마침내 공식 고사행사가 끝난 뒤 나는 행사에 초대받지도 표창받지도 못한 옛 추진팀을 모아 番外 고사를 지냈었다. 이번에는 눈물을 겉으로 비치지는 않았었다. 다소 공허하게 웃었던 것 같으나 실은 조금 과장한다면 눈물이었다고 할밖에. 젊었으므로 이 날의 경험을 삭이기에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이 해프닝은 내게 큰 마음 공부가 되었다. 寓話 한토막. 어느 눈온 날 새벽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는 등산객을 마주치게 된다. "안녕하세요" 인사했지. 그러나 발밑이 바쁜 상대방은 답례가 없다. 괘씸한 마음이 일어난다. '아침부터 남의 인사를...'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길 옆의 소나무를 보고 절한다. 한번, 두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번엔 답례가 없어도 괘씸하지 않다. 일과 나, 그 관계의 발견이다.

우리시대에 희망은 기업에도 달려있다. 昨今의 여러가지 정치사회적 문제가 아니었더라도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나간 세대가 기념비적 속도전 수행을 위하여 잠시 외면했던, 그래서 파괴되었던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덕목의 현주소가 오는 세대의 힘겨운 부담이 되고 있다.

회사의 신입사원 훈련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개구장이 아들이 자라서 이제 한 기업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탈각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기업교육의 가능성을 재발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기업이 그 경영원칙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되지. 일과 구성원의 관계... 근본이 엔지니어이므로 단순하다는 말은 칭찬도 되지만 때로는 자기 보위 능력조차 없다는 경멸의 뜻으로도 쓰인다. 어쨌건 나는 Professional의 단순함과 원칙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기업이 구성원 교육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이 여러 중요한 첫걸음의 하나일 것이라고 믿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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