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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연재칼럼35 검려와 제2바이올린
 집주인  02-24 | VIEW : 919
검려[黔驢]와 제2바이올린

2월말에는 그 동안의 이어오던 연재를 종료하자고 지난 달에 약속했기에, 이번 글이 연재를 끝막음하는 글이 될 것 같아서, 어제 오늘에 걸쳐 지나간 글들을 모두 한번 읽어 보았다.
지난 해 6월 10일부터 시작한 연재가 이번이 35번째가 된다. 살펴보니 처음과 마지막의 몇 차례는 불자 여러분께 리더십과 코칭에 대한 지식을 중언부언 전달한 셈이 되었고, 중간 몇 편은 코치의 마음가짐, 코칭의 기술적 측면, 코칭의 작동기제[作動機制] 등이 또한 부처님 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소회가 있어, 이들을 그 동안 경험한 코칭의 실제 사례와 연결하여 적어본 셈이 되었다. 또 ‘코칭도 불법도 그 이름을 좀 떠나면 어떠랴’라는 내용의 글을 쓴 뒤에는 스스로 글쓰기의 부담이 좀 가벼워져서 몇 편은 여행기, 소묘[素描], 수상[隨想] 형식을 빌어, 과거 내가 써 지니고 있던 잡문들을 원용하거나 또는 자기표절 하여 구성한 것도 있었다. 쓸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였으나 다시 읽어보아 부끄러운 바 없지 않음이, 마치 술에 취해 왕 희지 너 보란 듯이 일필휘지 써 내린 난정서[蘭亭序] 한 줄을 술 깨어 맨 정신에 다시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불교와 코칭’이란 제목부터 버거운 주제였는데, 결국 리더십, 코칭에 익숙지 않은 불자들에게는 쥐꼬리만한 리더십과 코칭의 지식을, 불교에 익숙지 않은 코칭계 분들에게는 여기저기서 어깨너머로 들어 얻은 불교에 대한 알음알이를, 엉거주춤 이리저리 벌여놓아 도회[韜晦]한 꼴이 되었으니 눈 밝은 이가 보면 여북하겠는가? 게으른 자의 겉핥기 삶이었으니, 남과 나눌 것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만, 이 글들을 통해 내가 자처했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과연 나는 그 역할의 사명을 맡을 자격이 있었을까? 글 쓰기를 맡기 이전에 해보았어야 할 질문을 언제나처럼 한 박자 늦게 자문[自問]해보게 되는 것은, 늦었지만 좀처럼 얻기 어려운 귀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받은 행운이라 하겠다.

15년 전쯤의 일일 것이다. 현천서실에 자주 들리던 원로시인 민영[閔暎] 씨가 나를 서실 구석으로 가만히 부르더니, 손바닥만한 책을 한 권 주셨다. 작고 화가이자 수필가인 김용준의 글 모음 ‘근원수필[近園隨筆]’을 1988년 당신이 발문을 써서 재 발간한 범우문고[汎友文庫]의 문고판 서적이었다. 김용준은 자신을 원숭이나 노새와 다름없다고 비하하여 근원[近猿], 검려[黔驢] 등으로 자호[自號] 하였었는데, 나중 그 음을 따서 근원[近園]이라 호를 정하였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서화[書畵]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애정, 거속[去俗]한 예술가의 삶을 유려한 필치로 써낸 향기 높은 수필집인데, 자신을 검려라 칭한 소회는 아래와 같았다.
중국의 검주[黔州]라는 땅에는 호랑이는 있으나 나귀는 없었는데 어느 날 장사꾼 하나가 나귀 한 마리를 끌어다 산 밑에 매어두었다.  호랑이라는 놈이 하루는 내려와 보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동물이 떡 버티고 섰는데, 거무틱틱한 놈이 커다란 눈깔을 껌벅거리며 섰다가 소리를 냅다 지르는 꼴이 어마어마하게 무섭게 보였던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갔것다. 그러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귀란 놈, 시시때때로 소리를 질러대고 시원찮은 발길질을 선 보이니 호랑이가 가만히 보아하니 그까짓 것 무서울 것 없다, 이리저리 다루어 보고 마침내는 물어뜯어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근원이 스스로 자신이 그림 그리는 일, 수필 쓰는 일을 어디선가 멈추지 못하고 마침내 못난 재주를 다 드러내어 세인의 비웃음을 샀다고 겸양, 이 일을 나귀의 어리석은 발길질에 비유하여 자신을 검려라 칭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지하철 역에서 기차 들어오기를 기다릴 때면, 무심코 눈 닿는 곳에 붙은 글들을 읽곤 하는데, 최근에 읽어 기억에 남은 글은 오케스트라의 명 지휘자 번스타인의 말이었다. 누군가 번스타인에게 물었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어려운 악기는 어떤 것인가요?”
“제2바이올린이지요.” 번스타인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제2바이올린을 제1바이올린과 같은 열정을 갖고 연주하는 연주자를 찾기 어렵거든요.”

자, 이제 어리석은 나귀의 발길질 같은 글쓰기를 마친다.
그러나 못난 재주이고, 제2바이올린의 역할이었을 망정, 제1바이올린 주자의 열정을 가지고 그 일을 맡았었다는, 그런 자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살[Bodhisattva]의 길도, 코치의 길도, 또 어쩌다 잠시 반연된 잡문 쓰는 일도 무슨 분별이 있어 제1, 제2를 나눌 것인가?
다만 서산대사께서 선가귀감에서 경계하신 바, 빈 수레를 한갓 말재주로 칠갑하여, 변소에 단청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저으기 두려울 뿐이다.

링크: 현대불교 제772호 10.2.24. '허달의 불교와 코칭35' 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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