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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롭게 - '불교와 코칭' 연재 이후에...
 집주인  03-11 | VIEW : 930
맑고 향기롭게

연재를 끝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석한 어느 전문코치들의 모임에서 잘 아는 젊은 여성 코치가 뜬금 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코치님, 5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계시기를 원하세요?”
“글쎄, 나보다는 좀 더 젊은 코치에게 물어보면 어때?” 웃으며 대답하고, ‘선수끼리 왜 이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 자리를 끝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 다음 날도, 그 질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말 5년 뒤 나는 무엇이 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내일 모레면 70인데, PCC, MCC 점차로 더 높은 인증자격 획득하여 더 유능한 코치, 더 영향력 있는 코치가 되려는 것이 나의 바람일까? 코칭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남 들으라는 듯이 떠벌려 놓은 주제에…… 그때까지는 큰 손자 녀석 열다섯 살 되어있을 테니, 시골에 전원주택 한 칸 마련하여 화초 가꾸어 놓고 아이들 기다리는 은둔자의 구안苟安을 기대하여 볼까? 아니면 어느 인연 있는 암자에 몸을 의탁하여, 새벽 예불 소리, 풍경 소리, 얼음장 밑을 흐르는 겨울 시내 소리를 법문 삼아 들으며 내려놓는 삶에서 얻는 기쁨 건너의 기쁨을 추구하여볼까?

지난 주에는 3일 간 진행하는 어느 코칭 워크숍에 FT[Facilitator] 그룹 중 한 명으로 참여하였는데, 마지막 날의 세션에서 마침 삶의 목표 선언[Life Purpose Declaration]을 작성하는 장면이 있었다. 참여자 각자가 로또 추첨을 통해 번화가 네거리에 커다란 사인보드 하나를 경품으로 받았다고 가정하게 한다. 그 사인보드에 ‘당신이 만들어 놓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 그림들을 채우기로 한다면 어떤 것들을 담을 것인가?’ 하는 것이 첫 번째 주어지는 과제이다. 그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다시 두 번째의 과제가 주어진다. 지금으로부터 200 수십 년 후 어느 공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의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 공원이 당신의 탄신을 기념하여 세워진 공원이라면 어떻겠는가? 그 공원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명명하겠는가? 당신의 무엇을 그들이 기리고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워하고 흠모하려고 거기 모여들었을 것인가?’ 등을 상상해보게 된다. 마지막 과제는 당신이 발명가가 되는 일이다. 당신이 발명가가 되어 공항 보안검색대에 설치된 금속 탐지기 비슷한 장치를 하나 창안하였다. 그러나 이 장치의 기막힌 점은 이를 통과하는 사람의 성품을 버턴 하나 눌러 당신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작용이 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이 장치에 어떤 기능을 부여하여 이를 통과하는 사람들을 개조하려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해 보는 일이다. 이 과정을 다 끝마치면, 워크숍 참여자들은 아래와 같은 ‘삶의 목표’ 선언문을 준비하도록 되어있다.
나는 __________하는 ___________이다.
이 선언문을 손짓, 발짓, 몸짓[전문용어로 Geography라고 표현한다] 섞어 여러 사람 앞에 공표하는 것으로 그 부분의 세션을 막음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어떻게 이 과정을 수행하였을까? 모두 한번 따라 해보시기 바란다.
워크숍 참여자들을 독려하여 이 과정을 수행하면서 필자에게 자꾸만 되돌아와 부딪치는 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5년 뒤의 자신’에 대한 성찰 질문이었다. 이로써 필자도 자신의 ‘목표 선언문’을 재정비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나는 맨 먼저 내가 다니는 불이선원 입구에 붙어 있던 심상한 표어 한 구절을 생각해내게 되었다.
‘맑고 향기롭게’
내가 로또로 뽑은 사인보드에는 그러므로 이 글을 실어 보리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글이 아니라 향기를 전하는 방법은 없을까? 대원군 이하응의 석란石蘭, 바위틈을 비집고 서생捿生한 짧고 강인한 촉의 난 한 포기, 사인보드 화면에 Fade-in, Fade-out 은근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면, 한 줄기 꽃대에 클로즈업, 수묵화의 난 꽃에서 피어올라 때마침 부는 바람에 실리는 암향暗香이 되리. 나는.
그래서 소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은 명상자의 지오그래피Geography로 ‘삶의 목표 선언’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대들의 창에 스며들어 잠시 당신의 머리맡을 맑히고 사라지는 한 줄기 난향蘭香입니다.”
워크숍의 목적에는 그럭저럭 맞추었다지만, 그러나 나는 이 선언문의 수사학이 그 맑음과 향기로움을 훼손하는 것이 싫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침묵하는 향기로움은 어떤가? 맑고 향기롭게, 맑고 향기롭게……

어떤 것이 맑음이며, 어떤 것이 향기로움인가?
5년 뒤, 맑고 향기로운 불자이기를 위하여 나는 지금 무엇을 덜어내고 있으며, 어떤 새로운 내려놓음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인가? 이어지는 불자 코치의 성찰질문이다.

10.03.11

후기: 이 글은 연재 글을 책으로 출간하자는 논의를 현대불교 신문사와 하면서 에피로그로 쓰면 어떨까 하여 쓴 글이다. 여기 올려 여러분들의 청감을 구하는 바이다.
후기 하나 더, 이 글 쓰기를 마친 오늘 오후, '맑고 향기롭게' 살다 가신 법정 스님의 부음을 접하였다.
합장하여 잠시 스님이 끼치고 가신 향기를 흠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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