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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
 집주인  03-26 | VIEW : 654




사장학과 일의 도道


코치인 당신 앞에 앉은 고객이 지금 막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사장이라고 상정想定하자.

그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앉아 있다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해 코치로서 그에게 던질 적절한 질문은 어떤 것들일까?
“회사를 설립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어떤 회사를 만들고자 합니까?”
“사업의 도메인은 어떻게 정하였습니까?”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당신의 강점과 전략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기존 또는 미래의 경쟁기업과 차별화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좋은 질문이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우선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몇 년 가는 기업을 만드시렵니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조선일보의 토일土日섹션 Weekly Biz 2011년 2월 26/27일자 지면에는 ‘머크 사社는 왜 죽지 않는가’ 라는 제목으로 올해로 344 년을 존속, 성장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 기업, 독일 머크 사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다름슈타트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1688년 창업자인 프리디리히 야콥 머크가 세운 ‘천사약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827년 그의 후손 하인리히 머크가 이를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제약, 화학회사로 탈바꿈 시켰다. 현재 머크 그룹은 여전히 제약, 화학 업종에서 전 세계 67개국에 진출해 4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 글로벌 기업이며, 2010년의 매출액은 93억 유로(약 14조원)에 달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기업을 머크 가문이 무려 13대째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만 3년 동안 SK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필자는 작고한 최종현 회장이 남긴 그의 사장학 SKMS, Supex 추구를 후배 경영진에게 강의하는 한편, 기업교육에서는 소홀하기 쉬운 품성교육을 보강한다는 뜻에서 7 Habits[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리더십Self Leadership, 인간관계리더십Interpersonal Leadership을 함께 강의하였다.
기간 중 강의한 내용을 모아 모두 10강講의 강의록으로 정리하여 Web Book 형태로 공개 사이트에 올려놓았었는데, 그 강의록 Transcript의 제목을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라고 정하였었다. ‘천년’이라고 기업의 존속 수명 목표를 숫자화 하여 제시한 것은, 최종현 회장이 평소에 늘 펼쳐온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하여야 한다’는 지론持論에서, ‘영구永久’라는 단어가 막연한 개념이어서 자칫 목표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오도誤導할 수 있는 점을 보완한 것이다. ‘천년’이라는 목표 역시 추상적이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분에게는, 머크 사가 실증으로 보여준 344년의 존속과 성장의 역사가 좋은 답변이 될 것이다.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다음 해의 일이다.
내가 이천에 소재한 SK텔레콤의 연수원에서 강의를 끝내고 교수실에 앉아 있으려니 일과를 끝낸 연수원 원장과 몇몇 HR 전문가 팀이 발동을 걸어왔다.
“교수님, 동동주 한 잔 어떻습니까?”
“좋지.”
일언지하에 의기투합하였다.
연수원을 나와 이천 쪽으로 진로를 잡다가, 도드람산 자락을 서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채 10분도 못 되는 거리에, 시인 여呂 여사가 남편과 함께 직접 동동주 빚고 도토리 묵을 쑤는 ‘산 모롱이 돌아 들꽃 피는 집’이라는 긴 이름의 술집이 내 단골집이었다. 목을 넘어가는 맛은 순해도 독하기가 한 방구리 마시면 소주 한 병 반 꼴은 착실한 동동주를 몇 방구리 째 비우고 모두들 좀 맛이 간 상태에서 이야기 꽃이 피었다.

“자, SKMS를 한 마디로 한다면 무얼까?”
누군가가 물었다.

“사장학?”
그도 그렇겠네, 회장이 자신이 만든 경영법을 때로 그런 이름으로 불렀었지. 나는 회상에 잠겼다.
“이봐, 다른 그룹의 회장들, 소위 성공했다는 경영자들이 말이야, 각기 자기 나름의 사장학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그걸 남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를 않아. 그렇지만 나는 달라. You[자네]들한테 내 사장학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야. 모두들 이걸 배워서 다 사장 되면 얼마나 좋아. 그룹 내 회사의 사장이 되어도 좋고, 아니면 나가서 독립해 사장 되어도 좋고...”
최 회장은 이렇게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는 아래 사람을 부르면서 ‘You’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영어 표현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 ‘You’라는 단어가 갖는 평등한 뉴앙스를 존중한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SK교敎?”
그룹 내에서는 회장을 교주, 손길승 부회장은 부교주, 꼭 비아냥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농 삼아 부르는 일도 있었다. 교주라면 대단히 민주적인 교주였었다. 민주적인 종교라는 것이 만약 있다면 말이지. 그럼 나나 그대들은 뭘까? 전도사? 새끼 전도사?

“최 회장의 취미생활!! ㅋ ㅋ”
그것도 말은 되지. 회장은 자나깨나 SKMS/Supex 빼놓으면 다른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회장의 일과를 살펴보면 그랬다. 아침 운동, 기氣체조와 단전 호흡을 마치고 10시반 출근, 1 시간쯤 책상 머리에 놓여진 그날의 요약보고서를 읽고 나면, 회장실 옆 전용 식당에 그날의 번호표를 받은 어느 회사인가의 수펙스Supex 보고 팀이 점심식사 준비 완료 태세로 대기해 있게 마련이었다. 회장이 입장해 좌정한 후 그날 보고 팀과 식사 팀의 명단을 경영기획실 배석 임원으로부터 넘겨 받아, 꼼꼼히 거기 앉은 보고 팀원의 면면과 맞추어 들여다 보고, 육개장이었든, 계절 별미든 그날의 식단에 맞추어 식사가 시작된다. 특히 최종현 식 육개장은 맛있다는 정평이 있었다. 한우 양지 살을 잘 고아 맛을 낸 맑은 장국에, 장조림처럼 칼 대지 않고 손으로 찢은 고기, 제 기름에 볶은 고추장이 따로 종지에 담겨 나왔고, 합에 담겨 나오는 밥이 늘 자르르 윤이 흐르고 촉촉하면서도 밥알이 살아 있었다.
식사 끝나면 소파가 놓인 옆 방으로 옮겨 과일 등 후식을 먹은 뒤, 그날의 Supex 보고가 시작되는데, 해당 사장 또는 관련회사가 있는 경우 관련사의 사장이나 임원이 배석하는 것이 상례였다.
보고가 끝나면 회장의 피드백Feedback이 있는데, 이 시간이 보고자 뿐 아니라 해당 사장들까지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너무 친절할 정도로 SKMS나 Supex 추구에 대한 회장의 교육이 이어지는 경우는 일종의 기합으로서, 그날의 보고는 깨졌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취미가 아니고는 회장이 그처럼 똑 같은 이야기를 질리지도 않고 되풀이 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입들을 모아, '취미생활'이라는 뒷말이 생겨난 것이었다.

“SK의 언어[Language]시스템.”
누군가가 중심을 잡고 말했다. 이 정의定義는 실은 '017' 제2이동통신 합병할 때, 그 임직원들에 대한 SKMS 교육에서 내가 처음 창안해 쓴 말이었다. SKMS 교본 들여다 보며 뜨악한 표정으로 앉은 중견간부 수강생들을 보고 내가 물었다.
“여러분들 미국이나 캐나다 뒤늦게 이민 간 친지들이 있지요?”
“네.”
“그 분들 그 사회에 정착할 목적으로 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나요?”
“…”
“영어를 배웠죠. 그렇지 않나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와서, 그렇지 않아도 김 새는데, 무슨 SK 고유의 경영법 배워야 한다고 시험까지 치고 난리 부르스니, 참 신세 처량하다, 그렇게 자신들을 비하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꺼낸 이야기였다. 새 문화권에 왔으면 그 언어부터 익히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 메시지였다.
“SKMS[SK경영관리체계]는요, 여러분 생각이 맞습니다. ‘마른 행주 한번 더 짜자.’ 뭐 그런 정신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요. 그러나 짜기는 짜는데, 구성원의 physical engagement를 쥐어짜자는 것이 아니고, mental engagement를 쥐어짜자는 겁니다. 재미 있는 것은요, physical engagement는 힘들고 짜증이 나는데, 두뇌활용[Brain Engagement]의 경우는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쥐어짜기가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니 우선 SK 문화가 사용하는 언어와 그 언어의 겉 구조 속에 들어있는 사고방식을 익혀야 할 것 아닌가요?”
그래서 등장한 말이 Language System이라는 표현이었다.

“다 그럴 듯 한데 말이야.” 내가 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어때? ’일의 도道’라고 말한다면?”
돈 들여 애써 마신 술기운이 가시는 듯 좌중이 다소 숙연해진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글씨 쓰는데 서도(書道)가 있고, 차를 마시는데도 다도(茶道)가 있다고 법석이다.
정치하는 데는 이제 다 잊고 말았지만 제왕(帝王)의 도(道)가 있었고, 심지어는 쌈패들에게도 건달도가 있었던 것 낫살 먹은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런데 기업 경영하는데 아무 도(道)가 없어도 되겠는가? 일하자는데 아무 도(道) 없이 휘뚜루 마뚜루 해서 되겠는가?
더구나 천년 가는 기업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모였다는데.

최종현 회장 살아 생전에 'SKMS, 이것이 일의 도道다' 그렇게 부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누가 읽어주지도 않은 내 나름의 회장 추도사 쓰면서 내가 그 이름을 붙였다.
아마도 회장도 이 명명命名을 듣고 어디선가 ‘허교수, You 때문에 느닷없이 내가 도령道領이 되었네.’ 하며 빙그레 웃으시지는 않을까.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내 강의록의 부제副題를 ‘일의 도道’라고 명명하였었다. 기업은 일을 통하여 이윤을 창조하고, 그 이윤에 의하여 존속과 성장을 도모하는 의사擬似 인격체이므로 그 수명이 천년 되도록 오래 가려면, 변하지 않는 원칙, 즉 도道에 합치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소회를 나타낸 것이었다.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S&P에 의하면 세계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15년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코칭 질문을 통하여 고객으로부터 자신이 막 창업한 기업을 15년이 아니라 ‘천년 가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대승적大乘的 목표'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다음에 필요한 후속 조치는 어떻게 하면 될까?

기업과 여러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의 관계를 승-승이 이루어지도록 설계하여, 기업을 머크 사처럼 3백 년 넘어  천년, 아니 영구히 존속 발전하게 하는 명제는 야심찬 창업자라면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한 가슴 설레는 목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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