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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환경의 변화를 감지케 하는 항온恒溫
 집주인  04-09 | VIEW : 589
경영기본이념
 
말콤 머그리지Malcom Muggridge의 개구리.
이 그림을 모르는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요즘은 요놈이 화두(話頭)이니까.
그래도 혹 모르는 독자 위해 짧게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집어 넣으면 어떻게 될까? 어마 뜨거라! 그러면서 후다닥 튀쳐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구리를 그냥 실온(室溫)의 물을 담은 비이커에 넣고 알코올 램프로 이 비이커의 물을 데우면? 물이 뜨듯해 오르면서 개구리가 기분 좋게 온욕(溫浴)을 하다가 물이 더 뜨거워지면 그만 삶아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야기인즉 그렇다는 것인데, 이걸 실험으로 입증한 사람이 Malcom Muggridge였다나?

'Deep Change or Slow Death!!'
로버트 퀸Robert Quinn 이라는 경영학자가 이런 제목으로 책을 썼을 때, 또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고 그 뒤를 이은 최태원 회장이 초기에 같은 제목을 인용하여 사내 강연을 했을 때, 아마 이 개구리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개구리는 자기의 환경이 치명적(致命的)으로 바뀌어 가는 줄 모르고 유유히 그 속에서 목욕을 즐겼을까?
'변화가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변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온다' 또는 '알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성의 것이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는 경향이 있다' 등 여러 가지 해설들을 이 그림에 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빠뜨리면 안된다. 개구리가 이 변화를 감지 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우둔해서가 아니었다.
변온(變溫)동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항온(恒溫)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기업경영의 환경이 변화해 가는 것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갖는가?  여러분 내부(內部)에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항온이라고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바꿔! 바꿔! 모두 바꿔! 그런 제목의 유행가도 있었고. 마누라와 아이들만 빼곤 다 바꾸라고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기업 총수도 있었다.
변화에 대한 과단성 있고 timely한 대응, 대단히 중요하다. 오죽하면 CEO 대신 CDO(Chief Destroying Officer)란 말이 생겼겠는가?
그러나 바꾸는데 용감하기 전(前)에 한가지는 짚고 가자.
변화에 대한 대응이 무모(無謀)한 대응으로 끝나지 않는, 과단성 있는 대응이 되려면,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을 디딤돌로 삼아야만 되리라는 이야기인데, 한번 내 자신과 주위를 뒤돌아 볼 일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런 디딤돌이라 할 것이 있는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항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것이 그 항온에 해당하는 그 무엇일까?

앞에서 일의 정의를 통하여 기업경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천년 가는 기업을 만들자는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을 경영해 나갈 것이므로 여기서 모두 합의하는 기업경영의  정의, 목표, 원칙 등을  선언해 놓으면 그것이 앞으로 경영여건이 어떻게 변하든 이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할 항온의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최종현 사장학에서는 여러 논란을 거쳐 마침내 '공헌하다 떠나야 한다'는 '기업관'을 선언을 함으로써 천년 가는 기업, 영구히 존속 발전하는 기업을 만들기로 약속하였다.

이와 맥락을 같이 하여, '기업경영'이란 기업의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무 구조를 튼튼히 하고 사회규범에 맞는 경영활동으로 매출액을 신장하여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지속적으로 이윤극대화를 이루어 기업의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게 함으로써 영구히 존속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되고 이윤극대화는 그 수단이 되는 구조이다. '창의력과 기업코칭'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었지만, 최근 기업의 사회적 공헌, 심지어는 초과 이윤의 공유 등 납득 가지 않는 의무를 기업 외부의 영향력들이 강제하려는 분위기도 있으나, 경영자가 이에 흔들려 기업경영이 지향하는 지상至上의 목표가 지속적 이윤극대화임을 잠시라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설사 기업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기업 외적 요구에 부응한다 하드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윤극대화를 지속적으로 이루기 위해 현실에 영합하는 차원에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지, 사회적 공헌이나 이윤의 공유, 배분 따위가 우선 순위를 뒤집고 기업경영이 추구하는 지상至上의 목적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윤극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면 된다.

경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면? 기업이 생산 공급하는 상품, 즉 제품과 서비스가 경쟁우위를 확보함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여기까지 '기업관', '기업경영의 정의', '기업경영의 목표'과 다음에 설명할 '경영원칙'을  묶어 최종현 회장은 이를 '경영이념'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를 테면 이것들이 약속이며 기업훈의 역할을 하여 최종현 사장학의 항온恒溫이 된다.

경영원칙은

'인간 위주의 경영'
'합리적 경영'
'현실을 인식한 경영'

세 가지로 정하였는데, 아래에 각 항목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붙인다.

언젠가의 SERI 경영노트에 ‘몰입과 열정의 경영-인본주의 경영’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존중의 경영에 대한 글이 실린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이 이른바 요즘 경영학자들이 경영을 보는 시각을 대표하는 셈인데, 이를 읽어보면 그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마음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인간 존중의 철학'의 바탕에서 '인본주의 Humanism 경영'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 점이다. 인적자원Human Resources, 또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까지에는 이의가 없는데, 그러므로 '인본주의 경영'을 해야한다는 것이 당연한듯 하면서도 따져보면 논리적 비약인 것이다. 어쨌든 이 SERI 경영노트는 '그러므로' 인본주의 경영을 하기 위해 신뢰 구축과 자부심 발현, 비전과 가치공유가 필요하며 이것이 있어야 구성원의 몰입과 열정이 확보된다고 서둘러 결론을 맺었는데, 추론의 과정에는 의문이 있었으나, 결론으로 나온 처방은 올바른 처방이었다.

최종현 사장학에서도 인간위주의 경영을 단연 경영원칙 중의 첫 번째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이 ‘인간위주의 경영’은 결단코 Humanism 경영이 아닌 점을 천명하면서 이를 시작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업관에서 이미 ‘이기적 기업Selfish Enterprise’의 의미를 밝혔으므로, 여기서도 '인간위주의 경영'이란 결코 기업의 존속과 발전보다  인본[人本, Humanism]을 가치우선적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업의 영구 존속 발전을 위하여는 그 생존기계인 구성원이 다른 어느 자원[Resource] 보다 더 중요하므로 이를 철저히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당시 남부여대하고 남으로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피난민들에게 재봉틀은 생계유지를 위한 무엇보다도 귀한 자산이요 생산능력이었다. 다른 가재도구는 다 무거워 버리고 가면서도 재봉틀 하나는 머리에 이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결코 버리지 않은 것은 이것이 입에 풀칠 하기 위한 생산의 도구로서 인적자원인 재봉사裁縫師의 존재보다 더 귀한 자원이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행여 눈 맞아 녹슬세라 기름칠 하고 조이고 닦아가면서 피난 도중에도 그 가용 상태를 시시각각으로 살피고 유지하였던 것인데, 이때는 인적자원의 중요도 보다 재봉틀이라는 물적 자원의 중요성이 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이 우선 순위가 바뀌어 기업에서의 구성원 중요도가 물적 자원보다 우선한다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구성원을 언제나 physical/mental [brain] engagement 가 가능하도록 반짝반짝 닦아놓기 위해서는 재봉틀 기름이 아니라 무엇을 주입하여야 하며, 닦고 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억설臆說이지만, 만약 구성원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기업의 영구 존속과 발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틀림없는 길이었다고 한다면, 인본주의 경영이 아니라 인간자원 위주의 노예경영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영환경 하에서는 구성원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인간이므로, 인간답게 대우해 주는 것이 기업과 구성원의 공동추구 가치인 창의력, 즉 자발적 의욕적 두뇌활용을 유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나타나므로, 인간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간답게 대우하겠다는, 인간 위주의 경영원칙이 대두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본경영'과 '인간 위주의 경영'은 현 시점과 상황 하에서, 결론은 같으나 시발점은 다르다는 것을 밝혀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장비를 점검하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듯, 구성원도 그 상태를 점검하고, 인사관리라는 일반관리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포상, 승급, 승진, 이동 등을 통해 기름칠 하며, 직속 상사의 특별관리를 통해 섬세한 컨디션의 이상 유무 점검, 또 인정 칭찬을 통한 고무, 코칭 등에 의한 육성 등 닦고 조이는 일을 철저히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가리켜 ‘인간 위주의 경영’이라고 정의하고, 최종현 사장학 첫 번째 경영원칙으로 삼았다.

두 번째의 경영원칙은 ‘합리적 경영’이다.
경영의 제 현상을 실증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회규범에 비추어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여, 멋 있는 방법으로 집행하라는 것이다.

햅쌀이 나왔을 무렵이니까 어느 해인가 초가을이었다. Supex 보고를 하러 회장실에 모여 우선 점심 식사를 하는데, 기름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이 나왔다. 마침 동석했던 임원 중에 여주 출신이 있었는데, 무심코 “이거 여주 쌀이네요.” 하는 자기 고장 쌀 자랑이 나왔다.

회장이 웃지도 않고 그 임원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더니 물었다.
“You 들은 여주 쌀이 맛있나?”
“네 맛있지요.” 여주 출신 임원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왜 여주 쌀이 맛있는지 아나?”
“네?”
“미국에 가면 말이야. 여주 쌀 같은 것은 맛없고 스티키sticky 하다고 해서 태국 쌀보다 인기가 없거든. 그래서 값도 싸고.”  
“아 그거야…”
거기서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더니, 식사 후 자리를 옮겨 과일로 후식을 하면서 최 회장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로 지은 밥이 더 맛이 있지.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름 섭취가 부족했던 때의 인식과 선호가 그대로 기억 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거야. 서양 사람들은 다양한 다른 소스로부터 기름기를 섭취하기 때문에 굳이 쌀로부터 기름기를 섭취할 필요가 없으므로 쌀은 구수한 태국 쌀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지.”
그러더니 다시 여주 출신 임원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그런데, 자네 동네 여주 쌀은 왜 기름기가 많은가?”
“… …”
“거 봐, 모르지?”
회장이 짓궂게 웃자, 여주 임원은 어리둥절 바보가 되고 모두들 영문 모른 채 따라 웃었다.
“논물이 차가워서 그런 거야. 여주 이천 지역의 논은 하늘만 바라다보는 천수답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끌어 관개를 하는 논이 많거든. 그러니 차가운 물의 온도에 대항하여 벼의 배아胚芽을 보호하려고 기름기를 더 만들어 이를 눈에 씌워 보온을 하게 된 것이지.”
그러고 보니 최 회장은 서울대 농예화학과 출신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별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이런 일도 있었다.

유공이 여의도에 사옥을 새로 짓고 이사 간 뒤 얼마 안된 때의 일이다.
회장이 새 사옥을 둘러 보러 와서 구내 식당에서 임직원이 먹는 밥을 시식해 보았다. 모두들 긴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장 앞에 앉아 식사를 같이 하며 하회를 기다리던 인사총무 담당임원이 혼 줄이 났다.
우선 밥이 틀렸다는 것이다. 밥알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떡이 되어 있으니 불합격. 또 국을 맛있게 끓인 것은 좋은데, 반찬의 가지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또 문제. 마지막으로 지적된 것은 김치였다.
“김치가 틀렸어. 김치가 맛있어야 다른 반찬의 가지 수를 줄일 수 있는데, 김치를 잘못 익혔어. 김치는 물 속에서 익혀야 하는데 말이야.”
회장의 지적을 받은 인사총무부서에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스팀으로 찌던 밥 솥을 얼른 바꾸어 일본에서 수입한 서랍 식 프로판 가스 밥 솥으로 개비하여 밥 문제는 해결을 보고, 반찬도 가지 수를 줄여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김치에 대한 코멘트였다. 김치를 물 속에서 익히라니? 수수께끼를 풀다 못한 담당 임원이 넌지시 청해 왔다. 다음 번 회장 브리핑 끝난 자리에서 김치를 물에서 익히는 비결을 물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회장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식당 담당자가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데요. 김치를 물에서 익히라는 말씀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회장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다 보더니 말했다.
“이 친구들아, You 들은 김장 담는 것도 못 봤나?”
“… …”
“배추 씻어 양념해 독에 넣고, 소금물 부어 간 맞추고 그 다음에 어떡하든가?”
“… …”
“큼지막한 돌 하나 주어다 그 위에 얹고 뚜껑 봉하지?”
“네.”
“그 돌을 왜 얹는다고 생각하나?”
그러고 보니 한번도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발효를 일으키는 균에 두 종류가 있어요. 염기성厭氣性과 호기성好氣性..
염기성은 공기를 싫어하는 균이고, 호기성은 공기를 좋아하는 균이지. 그런데 김치를 잘 익히려면 염기성 균에 의한 발효를 촉진해 주어야 하거든. 호기성 균에 의해 발효가 되면 김치가 군내가 나서 먹을 수 없게 되는 거야.”
이 원칙에 의해 ‘물 속에서 익힌 김치가 마침내 워커힐이 자랑하는 ‘수펙스 김치’가 되었다.

우스개 처럼 적었지만, 이것이 최 회장의 실증과학적 태도였다. 음력 달력에 적힌 24 절기가 태양력이라는 점도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단호한 이중과세 반대론자였으며, 김영삼 대통령 때 정치적 목적에 의해 부활한 구정을 못내 못마땅해 했다. 전경련 회장 재임 시 그가 적극 주창하여 정관계政官界에 많은 적을 만들었던 이자율 한 자리 수 하향조정 주장도 그의 실증과학적, 합리적 분석에 의한 통찰이었음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것이 그의 '합리적 경영'의 정의이며, 사장학을 이루는 경영원칙의 두 번째가 된다.

경영원칙의 세 번째는 ‘현실을 인식한 경영’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원칙을 벗어난 경영을 허용할 수도 있는 표현을 왜 경영원칙 속에 포함하느냐는 원론적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경영환경을 무시하고 정도正道 경영만을 주장하는 일은 경영비평가의 역할이지 경영자의 역할이 아니다. 필자도 비록 엔지니어로 출발하였으나 경영대학원을 귀동냥하고 다국적 기업과의 합작 기업에서 일하며 서양의 앞선 경영방식을 남보다 일찍 접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의 경영법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를 주장하는 일부 편향된 미국식 경영 사고는 우리나라 사회규범과 구성원 정서에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왜 사업권을 반납해야 합니까? 대통령 사돈 기업이라 해서 SK가 여러 가지 사업 기회에 근신해 온 것은 재계에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한 트럭도 넘는 사업계획서 와 설명자료 다 정정당당하게 심사 받고 따낸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내어 놓으라니요?”
실무자의 푸념이 아니었다. 당시 최 회장 다음 그룹 2인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임원으로, 제2이동통신사업 사업권 경쟁을 승리로 이끈 개선장군인 고위 임원이 회장 앞에서 흥분하며 토로한 말이다. 근거도 없는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사업권 반납 요구에 정면 대결하자고 외치는 자리에 우연히 있어 어깨 너머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깨끗이 반납해. 그 사람을 잘 알잖아.”
그 말 한마디로 사업권 반납이 결정되었다. ‘현실을 인식한 경영’을 이보다 더 웅변으로 증언하는 사례가 어디 있을까?
사족이지만 훗날 제2이동통신 사업권이 코오롱과 포항제철의 컨소시엄으로 넘어가고, SK는 당시 국영기업이던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실수요자로 확정된 후 어느 기회엔가 최 회장에게 물었다.
“이렇게 진행되는 구상을 미리 염두에 두셨던 건가요?”
이것도 당신의 Supex 추구였느냐고, 앞을 훤히 내다 본 것 같은 그의 혜안에 대한 감탄과 다소의 아첨이 섞인 질문이었다.
“아니야.”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사업권 반납이 곧 이동통신사업의 포기는 아니라는 정도의 생각을 가졌을 뿐이었지.”
그러더니 최 회장이 재미 있다는 듯이 내 눈을 빠안히 들여다 보며 물었다.
“전경련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우리에게 한국이동통신을 맡겼는데, 그것을 재계의 진정한 호의라고 생각하나?”
“… …”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SK 너 혼 좀 나봐라 하고 고소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야. 복마전이나 마찬가지인 국영기업체 인수해서, 그걸 가지고 새로 출발하는 민간기업과 정면 경쟁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뻔히 아는 사람들이거든.”
그런 셈법도 있었구나, 나는 현실의 다른 단면을 짤라 보는 최 회장의 날카로운 식견에 이번에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래도 상관 없어. 우리에게 SKMS, Supex가 있잖아.”
최종현 회장의 이야기는 언제나 이렇게 그의 사장학으로 끝맺어졌다. ‘현실을 인식한 경영’. 시시때때로 변하는 환경을 인식해 이에 거스르지 않고 때로는 실려 가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경영의 목표와 원칙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최종현 사장학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원칙이, 전술한 기업관 등 약속과 함께 경영이념을 형성하여, 말콤 머그릿지의 개구리와는 달리,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대응을 가능케 하는 기업경영의 항온恒溫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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