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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수술
 집주인  02-26 | VIEW : 551
며칠 안보이던 친구가 나타나더니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한다. 수정체를 갈아 끼웠다고 하는데 그 감회를 아래와 같이 술회한다.

“눈 앞이 화안한 것이 딴 세상에 온 것 같더군. 연필로 쓴 글씨를 보았더니, 종이에 묻은 연필심 자국의 농담(濃淡)이 표면의 요철에 따라 다른 것이 분명히 보이는 거야. 뭐가 생각 났는지 알아? ‘아! 잊고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늘 이걸 보고 살았었는데…’ 하는 생각.”

그의 목소리에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할머니 돋보기 끼시고 바느질 하는 옆에 배 깔고 엎드려 동화책 읽다가, 으스대면서 바늘귀 꿰어드릴 때의 추억. 손재봉틀 돌리다 실 끊어지면, (그때 실은 왜 그렇게 툭하면 끊어졌던지) “아무개야” 도움 청하시던 엄마 목소리. 다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래, 우리도 한 때는 다 눈 밝은 아이들이었었다.

입춘 지난 지도 벌써 일주일, 곧 추위가 가고 꽃 피는 봄이 올 것이다. 화창한 봄날 꽃 피는 산과들은 눈부시지만, 봄비 추적추적 오는 날의 도심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교통 혼잡한 길 운전하다 보면, 와이퍼 아무리 부지런히 작동시켜도 운전석의 차창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멀리 고비사막으로부터 날아온다는 황사 탓이다. 와이퍼 자국 지저분한 차창 너머로 거리를 보면 온 도시가 불결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현대생물학의 ‘다윈’이라고 불리는 리차드 도킨스 박사에 의하면, 눈은 가장 정밀한 진화 과정을 거쳐온 동물의 신체기관이라고 한다. 떼어내고 갈아 끼워도 되는 수정체 부분은 단순한 물리적 부분이고 정작 정밀한 부분은 망막과 신경이 상호 접속하여 뇌로 영상을 전달하는 메커니즘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 것인가? 명상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눈을 감고 명상할 때와 눈을 가늘게 뜨고 명상할 때의 집중도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음의 창에는 과연 지저분한 황사 물질들이 어디서 무슨 바람을 타고 왔다 사라져 가는 것인지. 아니, 그보다 더, 세월을 두고 마음의 수정체에 생성되어 쌓여온 얼룩의 집적[蘊]들은 왜, 무슨 굴절된 세상의 환영을, 어떻게 만들어 보이고 있는 것인지, 늘 궁금했었다.

2011년은 국립암센터의 ‘건강파트너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내 마음의 눈을 백내장 수술한 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BS 명의(名醫) 프로그램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를 보면 위 사업을 창안 추진한 국립암센터(지금은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의 윤영호 박사 이야기가 실려있다.

암을 극복한 승리자들(암 완치 후 5년 이상 경과) 중 자원봉사의 뜻을 가진 분들을 각 병원의 추천으로 선발하여, 리더십 교육, 코칭 훈련을 통해 ‘건강파트너’로 양성하고, 이분들을 암에 걸려 실의와 분노에 빠진 환자들에게 조력자로 투입 활동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필자도 뜻 깊은 이분들의 리더십 교육, 코칭 교육에 전문강사로 참여하여, 여러 날 동안 감동 가득한 시간을 함께 하였다.

“암을 만난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나와 남을 바라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암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아무에게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기심 가득 찬 삶을 계속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분들이 워크숍 과정 중에 이구동성으로 들려준 고백이다.

이렇게 배출된 ‘건강파트너’들의 모임이 만들어져 2월15일 그 첫 번째 공식 모임이 열린다.

자신들의 힘으로 스스로의 눈과 마음을 열었을 뿐 아니라, 강사인 내 눈에 덮인 무명(無明)까지 긁어내 눈 밝던 시절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분들의 모임에 초청 받아, 내 마음이 한없이 행복하고 설렘을 느낀다.

[프라임경제에 게재 201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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