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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좋아하는 것
 집주인  12-09 | VIEW : 728

내 고등학교 동기 동창 중에 가끔 동기회 홈페이지에 좋은 글을 올려주는 이 준웅이라는 친구가 있다.
한동안 글쓰기가 뜸하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대장에 병이 생겨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했었다는 것이다.
입원하기 전에 시작한 글을 이제 끝냈노라고 "오래도록 좋아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너무 좋은 글이어서 우리 애들에게 퍼 보내고 내 댓글도 몇줄 올려 놓았는데 두 글을 모두 여기 싣는다.



  오래도록 좋아하는 것

                                                                                                          이 준웅



Reader's digest에서 이런 익살을 읽은 적이 있다.

  Definition of a true music lover A man who, if he hears a woman sing in the shower puts his ear to the key hole.
   [ 진정한 음악 애호가에 대한 정의: 한 여자가 샤워하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들을 경우 그 샤워실 열쇠 구멍에 (눈을 갖다 대지 않고) 귀를 갖다 대는 남자 ]

  나는 아무래도 이와 같은 음악 애호가는 못 될 것 같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동안 나도 classical music에 빠져서 많이 들은 때가 있었다. audio 器機를 좀 좋은 것으로 장만했다고 신이 나서 레코드 원판을 사 모으면서 듣기도 했고 내 차를 처음 가지게 되었을 때 출퇴근 시, 차 안에서 열심히 듣기도 했다.

  이럴 즈음, 집에서 식사시간에도 레코드판이나 CD를 올려놓고 잘 들었었는데 절대음감을 가질 정도로 청음이 좋고 고전 음악을 좋아하는 내 둘째 아들이 나보고 아버지가 집에서 제일 많이 듣는 음악이 무엇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글세, 내가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대로 판을 올려놓았지, 특별히 계속해서 들은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내가 많이 듣는 것이 두 개 있다고 했다.
  하나는 Beethoven의 Romance F major이고 또 하나는 Mozart의 Exultate Jubilate 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아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고 거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 두 곡이 내가 음악이라는 것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직접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들은 고전음악이었던 것 같다. 음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처음 보고 처음 들은 곡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그것이 내 머리에 깊이 각인되어서 다시 들을 때마다 그 때 그 음악이 생동감 있게 다시 살아나 좋아하는 것 같다. 백지 상태에서 처음 입력된 것이 이렇게 오래 오래 남아서 내가 제일 자주 찾을 정도로 좋아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내가 1954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고향 마을에서 라디오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그 당시 우리 마을에 전기 같은 것이 들어와 있을 리 없었다. 학교 교무실에서 라디오를 본 기억이 나지만 거기서 음악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고 그 외의 다른 source를 통해서 음악을 접할 길도 없었다. 그 때까지 내가 들은 음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가르쳐주신 교가, 광복절, 삼일절 등의 국경일 노래, 몇 개의 동요 등이 전부 였던 같다. 그 외로 생각나는 것은 6.25사변 후 人共治下에서 매일 저녁, 마을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따라 부르게 한 북조선 노래들이다.

  이렇게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운이 좋게 서울에 올라와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었는데 학교에서 단체로 '오케스트라의 소녀'라는 영화를 보러 간 일이 있었다. 그 영화에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왔었지만 나는 처음 듣고 보는 서양음악의 황홀경에 사로잡혔던 것만 생각나고 무엇을 들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천사 같은 소녀가 부른 노래 하나만 내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그 노래가 Mozart의 Exultate Jubilate에 나오는 Alleluia F major라고 우리반 친구가 나중에 가르쳐 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서, 몇 학년 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술제'라는 큰 교내 행사가 있었는데 음향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학교 강당이었지만 거기서 우리 학교 학생 한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 때 그 바이올린 곡이 Beethoven의 Romance F major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 때 들은 그 곡의 선율이 나에게는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 때 이렇게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심어진 이 두 곡이 F major였기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F major 곡이라고 하면 더 친근감이 들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백짓장 상태에 있을 때 처음 그려지는 그림의 형체나 색채가 그 후 그려지는 모든 그림의 기저를 이루는 밑그림이 되고 그것이 가장 오래 남아 있는 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첫 사랑이라는 것도 이래서 오래 못 잊어지는가 보다.

  나는 요즘 두 돌 지난 손자와 한 돌 지난 손녀를 한 번씩 안아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백지 상태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바탕을, 더 아름다운 밑그림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하고.

  인간의 정서는 어릴 때 가진 자연환경에 뿌리를 둔다고 한다. 또 인간의 성품은 유아기 유년기에 다 형성되며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 아들 며느리가 이 손주들에게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자주 걱정을 하게 된다.

  손자, 손녀가 크는 것을 보면서 이런 말들이 다시 생각난다.

  Parentage is a very important profession; but no test of fitness for it is even imposed in the interest of the children.
  [ 부모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적성검사를 아이들을 위해서 실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Parenting is the demanding job in the world for which there can be no real preparation. It's all "on-the-job training."
  [ 부모 노릇 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주의를 요하는 일인데 실제로 그것에 대해 준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모두 현장 실무 훈련을 통하여 된다.]

  Children are like wet cement. Whatever falls on them makes an impression.
  [ 아이들은 굳기 전의 시멘트와 같다. 거기에 무엇이 떨어지든지 그 자취가 남는다. ]

  What's done to children, they will do society.
  [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행해진 것을 그대로 사회에게 행할 것이다. ]

  What its children become, that will the community become.
  [ 한 사회는 그 사회의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따라 그와 똑같이 될 것이다. ]

  The most important thing a father can do for his children is to love their mother.
  [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다.]

  The best security blanket a child can have is parents who respect each other.
  [ 어린이의 마음을 가장 안정시키는 것은 서로 존경하며 사는 부모를 갖는 것이다. ---security blanket: a blanket or toy carried by a child to reduce anxiety. ]

  The best inheritance a parent can give his children is a few minutes of his time each day.
  [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은 부모가 2,3분씩이라도 매일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


                                                                                      2006.12. 6




P. S.

  이 글은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쓰다가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그냥 두고 갔던 것입니다. 2 주정도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나왔는데 퇴원한지 4 주가 지났어도 수술 받은 곳 안쪽의 통증이 지금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제대로 앉기가 힘들어서 이제 겨우 마쳤습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이 정도나마 대충 마무리져서 올려놓는데 typing이 힘들더군요.


[내 답글]


형의 글을 허락도 안 받고 퍼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너무 좋은 글입니다.
나도 준웅 형 글을 오래도록 좋아할 것입니다.
이제 병상에서는 일어났는지요?
'그깟 대장 쯤' 할 일도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거기 매어달릴 형도 아닌 줄 잘 압니다.
아침에 도(道)를 보았으니 저녁을 맞이 하는 마음이 담연할 따름입니다.

11/22 아침 북경에서 둘째 손주가 태어났습니다.
두 아들의 아비가 된 큰 놈 앞으로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싶었는데, 형의 글이 그 문제를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가 마침 중국에서는 국경절 연휴이어서 일주일을 북경 아들 집에서 머물다 왔습니다.
만 다섯살 된 큰 손주가 한글을 깨쳤더군요. 그 기념으로 서울 돌아온 뒤, 매주 요일을 정해 손주에게 편지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형 말씀마따나 무엇을 그 백지와 같이 순수한 마음 속에 그려 놓아주어야 할지 두려운 마음이 일기도 합니다마는... 그 준비를 하는 마음이 설레이는 것을 느낍니다. 오랫만에 경험하지만 언젠가 분명히 만난 적이 있었던 익숙한 설레임입니다.
어제는 내년 일년 52주를 펼쳐 놓고 매주 손주와 다룰 토픽을 엮어 보느라고 은근히 바빴습니다. 아이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동안 많이 세속화된 할애비가 순화 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은 또 무슨 인(因)의 씨앗이며 무슨 연기(緣起)의 상즉(相卽) 상입(相入)인지. 부질 없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날씨가 찹니다.
김혜자 주연의 '다우트'라는 연극 공연이 있다기에 내자를 데리고 가보려고 예약해 두었습니다.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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