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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劒)
 집주인  12-09 | VIEW : 779

아내와 함께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조용필의 노래여행을 다녀 오는 길이 겨울답게 춥습니다.
이제 며칠 안남은 병술년, 그래도 금년에는 귀한 둘째 손자를 북경에서 얻었습니다.
병술년 지나면 정해년이네요. 문득 생각이 나서 작년 정초에 썼던 글 한편 찾아 올립니다.


지난 해 1월1일에 올렸던 글 그대로 다시 올립니다.
아래 글의 갑신년을 을유년으로, 을유년을 병술년으로, 병술년을 정해년으로만 바꾸어 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네요.
그것도 별의미 없어 놓아둡니다.
이처럼 변하지 않으니 상(常)인가요, 그 역시 무상(無常)인가요?
지난 해보다 새해 맞는 아침이 더 홀홀하지 못한 것을 보면 지난 한해를 역시 덜어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는 징표입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얼 빠진 무사(武士) 하나가 자신의 검(劒)을 강물 속에 빠뜨렸습니다. 빠진 자리를 표시해 놓아 나중에 그 검을 찾을 욕심으로 주머니 칼로 뱃전에 표시를 해놓았다는 중국의 고사(故事)를 일러 각주구검(刻舟求劒)이라 합니다.

갑신년(甲申年) 지나니 을유년(乙酉年) 아니냐고 흐르는 세월 사이에 금[線] 하나 그어놓고, 지난 한해를 되돌아 본답시고 책상머리에 앉은 제 꼴이 이 무사와 진배 없다 할 것입니다.

불가(佛家)에 심(心)의 찰나(刹那)라는 말이 있어 영어로는 thought-moment 라 하는데, 본디 무상(無常)한 일체의 존재는 매 찰나마다 생주이멸(生住異滅)을 거듭한다는 뜻이니, 존재라 이름하는 바 환(幻)의 단속(斷續)을 설명한 것입니다. (Every moment you die and reborn.)
단속(斷續)하는 환(幻)의 찰나 그 Frame 사이에 금[線]을 긋는다면 아마도 그 금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진공일 것이니 이로써 일순 온갖 환(幻)이 사라질 것입니다. 금 긋기라면 모름지기 이런 금 긋기를 해야 마땅하겠지요.

덜어내자[損] 덜어내자 별렀건만 어찌 하겠습니까?
흐르는 시간 위에 금 하나 긋고 돌아보면 저금과 이금 사이에서 아직도 두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안도(安堵)와 석념(惜念)이지요. (Comforts and Regrets.) 허구(虛構)로 만들어진 대차대조표라는 이름의 일상(日常)이군요.
뺄셈의 계속입니다.

나선(螺旋) 운동의 아름다움은 되돌아와서 자신이 떠난 자리를 내려다 보는 데 있다고 합니다.
되돌아와 을유년(乙酉年) 병술년(丙戌年) 사이에 아니 삶과 죽음 그 thought-moment 사이에 다시 금 하나 그을 때를 위해 기도합니다.
각주구검(刻舟求劒) 표지 밑 거기, 시간의 강물 속에 제아무리 자맥질한다 해도, 마침내 잃어버린 검(劒)을 되찾을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스스로 이룬 지혜로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천 합장


지혜(智慧)는 생기지 않고 나날이 느느니 지해(知解)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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